운명의 실

이동용 (수필가/철학자)



사람은 착각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잘못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성을 갖고 있고, 이성은 생각을 하게 하며, 생각은 존재의 의미를 찾게 하고, 존재는 자신, 자기, 자아 등이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집의 형상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면서 보이는 게 형성됩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실존철학자 하이데거가 한 말입니다. 늘 묵상하는 말입니다. 스님이 염불을 외우듯이 나는 이런 말을 외우며 시간을 보냅니다. 


말을 알아듣는 존재는 사람뿐입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말을 알아듣고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정말로 신비로운 일입니다. 생각하는 일은 위대한 일입니다. 결국 인간 자체가 신비롭고 위대한 존재입니다.


아폴론 신전에 적혀 있었다던 말, “너 자신을 알라”는 불멸의 언어입니다. 


고대의 건축물처럼 우뚝 서 있는, 혹독한 세월의 검증에서도 살아남은 명언입니다. 


이 말을 소크라테스는 ‘진 그 자체’, ‘선 그 자체’, ‘미 그 자체’ 등으로 펼쳐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너 자신을 알라’에서 ‘너 자신’은 ‘너 그 자체’의 의미로 소급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줄 뿐입니다.


2019년 여름, 그 뜨거웠던 여름을 지나며 나는 거의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모든 고통은 주관적이지만, 책상에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숨을 쉴 수도 없었다, 피가 멈추는 것 같았다, 이 모든 주장들은 사실입니다. 


골반에서 시작해서 허벅지 위쪽까지 붙어 있는 근육이 말썽을 피웠습니다.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게 죽음이구나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유언을 남기는 심정으로 글을 썼습니다. 


완성된 원고를 마침 우연히 연락을 취해온 가난한 출판사에 넘겼습니다. 거의 이 주 만에 책이 나왔습니다. 


니체, 문학과 철학의 두물머리가 탄생한 것입니다. 원고 상태 그대로 책이 완성되었습니다. 오타 정리도 안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기뻤습니다. 그 자체가 나의 유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흘러 다행히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회복의 시간은 느렸습니다. 젊은 날의 근육을 다시 가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저 아프지 않는 근육을 가지겠다는 마음만 뜨겁습니다. 


정말 치열하게 저항했습니다. 지금도 침대에 누우면 굵은 나무토막처럼 굳어가는 근육을 작은 나무망치로 두들기며 고독하게 회복의 길을 걷습니다.


혹시 언제 죽을지 몰라 오타 내용은 SNS상에 공개되어 있는 다음 카페에, 나의 홈페이지에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오해는 없기를 바라며 그 내용들을 올려놓은 것입니다. 


그저 나는 살려고 발버둥쳤을 뿐입니다. 살고 싶었습니다.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죽을 때까지 죽지 않으리라! 이런 말을 되뇌면서 순간들을 버텼습니다. 버티고 버텨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조금씩 나아지는 그 현상을 응시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한강의 디 에센셜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읽고 있습니다. 


과거, 영어공부에 심취해 있을 때 민중서림에서 나온 엣센스 사전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그때부터 ‘에센스’는 나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라틴어로 ‘엑시스텐티아’는 현상을, ‘엣센스’는 본질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늘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애를 썼습니다. 보이는 것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를 추궁했을 뿐입니다.


디 에센셜, 그 책의 끝부분에 이르러 한강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자신이 깨달았던 바들을 조금씩 펼쳐놓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운명의 실에 묶인 듯, 현실과 허구, 시간과 공간의 불투명한 벽을 단번에 관통해서’ 자신의 몸속까지 연결되어 있는 그 무엇을, 작가 한강이 치열하게 투쟁했던 삶의 시간들을 읽어가며 나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하고 기억하고 반성했습니다. 


운명을 외면하지 않고 운명과 맞섰던 그 순간들이 이제는 영원한 별빛처럼 빛납니다.



작성 2025.11.10 11:14 수정 2025.11.1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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