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초의눈] '흔적'에 갇힌 권력 : 중국 지도부가 마주한 통치의 역설

당정체제 유지의 비용

그리고 유가와 법가의 도달할 수 없는 평행선

이 칼럼은 인민일보 4월9일자 "莫把“痕迹”当“政绩”(思想纵横)"(흔적을 정치적 성과로 삼지마라)"기사를 토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인민일보의 「思想纵横(사상종횡)」 칼럼은 당의 시정 방향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논설 코너입니다. "흔적을 성과로 삼지 마라"는 제목은 현재 중국 당국이 추진 중인 형식주의(形式主义)·관료주의(官僚主义) 척결 캠페인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기록은 남았으나,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이미지 Gemini 제작

 

오늘날 중국 행정을 향한 가장 뼈아픈 비판은 ‘흔적(痕迹)을 성과(政绩)로 착각한다’는 말이다. 시진핑 정부가 그토록 경계하는 ‘형식주의(形式主義)’와 ‘관료주의(官僚主義)’의 본질을 읽을 수 있다. 사진첩은 현장 방문 기록으로 가득 차고 보고서는 산처럼 쌓이지만, 정작 민생의 실질적 변화는 더디기만 한 기묘한 풍경. 이는 단순한 행정의 게으름이 아니라, 중국 통치 구조가 지불해야 하는 “필연적인 비용”이다.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정치철학의 오랜 두 축인 유가와 법가의 현대적 변용을 살펴봐야 한다.

 

유가는 정치의 본질을 ‘민심’에서 찾는다. 백성이 체감하는 삶의 질, 즉 ‘실(實)’이 정치의 성패를 가른다. 반면 법가는 통치의 핵심을 ‘측정과 통제’에 둔다. 엄격한 기준과 기록 가능한 증거, 즉 ‘형(形)’을 통해 방대한 관료 기구를 장악하려 한다. 문제는 오늘날 중국의 당국체제(Party-State System) 하에서 이 두 가치의 균형이 심각하게 무너졌다는 점에 있다.

 

중국 지도부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당의 영도를 모든 국가 조직 위에 관철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가적 통제가 필수적이다. 상급 당 조직이 수억 명의 당원과 관료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수치화된 지표와 ‘기록된 증거’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강력한 압박은 하부 관료들에게 “실질보다 안전한 기록”을 택하게 만드는 강력한 유인이 된다.

 

관료들에게 민생 성과(유가적 가치)는 변수가 많고 시간이 걸리는 모험이지만, 보고서를 완벽히 꾸미는 것(법가적 형식)은 즉각적인 정치적 생존을 보장한다. 결국 당 중앙이 통제의 고삐를 죄면 죌수록, 현장에서는 민심과는 무관한 ‘정치적 연극’인 흔적 남기기가 더욱 정교해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지도부는 수시로 ‘정풍 운동’을 벌이며 관료들을 다그친다. 하지만 이는 체제 자체의 설계결함이 아니라, 단일 정당이 무오류성을 유지하며 거대 대륙을 통제하기 위해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통치 비용”에 가깝다. 권력이 상부에 집중될수록 하급자는 ‘위’의 눈에 보이는 형식에 집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유가와 법가의 균형"은 어쩌면 현재의 중국 통치 체제 안에서는 도달하기 불가능한 영원한 숙제일지도 모른다. 기록은 필요하지만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성과는 체감되어야 하되 검증 가능해야 한다는 당위는, 통제 지향적인 당정체제라는 벽 앞에서 매번 무력해질 것이다.

 

정치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다. 흔적의 정치가 민심의 정치를 완전히 대체해버리는 순간, 국가는 가장 정교하게 설계된 시스템 속에서 가장 정교하게 실패하기 시작한다. 형식은 오직 실질을 위해 존재할 때만 의미가 있다는 그 오래된 진실이, 오늘날 중국 지도부가 마주한 가장 무거운 질문이다.

작성 2026.04.09 11:25 수정 2026.04.0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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