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선거의 예선전이 마무리되고 본선거의 막이 오르고 있다. 거리마다 화려한 현수막이 걸리고, 후보들은 저마다 고개를 숙이며 시민의 ‘충복’이 되겠노라 외친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투표함의 뚜껑이 닫히는 순간, 고개를 숙이던 이들이 돌연 상전(上典)으로 군림하려 드는 역설적인 풍경을 말이다.
『서경(書經)』의 「이훈(伊訓)」편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남에게 완벽을 요구하기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살펴라(與人不求備, 檢身若不及).” 이는 비단 위정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주권자인 우리 역시 ‘나는 과연 깨어 있는 주인인가?’라는 질문 앞에 겸허히 서야 한다. 국가와 지역의 지속 가능한 운영은 단순히 투표 당일의 선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재를 엄격히 살피고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주권자의 부단한 노력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흑(黑)과 백(白)을 가리는 상벌의 원칙
한비자(韓非子)는 인재를 등용하는 용인(用人)의 핵심으로 ‘명상벌(明賞罰)’을 꼽았다. 상줄 자에게 확실히 상을 주고, 벌할 자에게 엄중히 벌을 내릴 때 비로소 충신과 도둑이 뒤섞이지 않는 법이다.
오늘날의 선거는 바로 이 ‘상벌’을 확정하는 엄중한 심판대다. 우리는 클릭 한 번으로 후보자의 과거를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 누가 시민의 보편적 이익이 아닌 소수 기득권의 편에 섰는가?
* 누가 부정부패로 사익을 채우고 개혁의 발목을 잡았는가?
* 누가 시민의 목소리에 순응하고, 누가 오만하게 군림했는가?
선거는 우리를 대신해 일할 ‘일꾼’을 채용하는 과정이다. 일을 잘한 일꾼에게는 재고용(재선)이라는 상을 주고, 태만하거나 부패한 일꾼에게는 해고(낙선)라는 벌을 주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라는 기업의 주인인 우리가 행사해야 할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다.
‘무사유(無思惟)’라는 가장 큰 재앙
하지만 이 명확한 이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무사유(無思惟)’다. 한나 아렌트는 사유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악의 평범성’이 자라는 토양이며, 그 무엇보다 위험한 일이라고 일갈했다. 사실과 허구를 분간하지 못하고, 비판적 검토 없이 진영 논리에 휩쓸리는 ‘생각 없음’은 결국 우리 스스로를 노예의 길로 인도한다.
정치적 무관심과 무사유는 도척(盜跖) 같은 자에게 우리 집 곳간 열쇠를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가 사유하기를 멈출 때, 백이(伯夷) 같은 충신은 설 자리를 잃고 협잡꾼들이 그 자리를 꿰차게 된다. 흑과 백이 뒤섞인 혼탁한 세상은 위정자의 탐욕보다 유권자의 무관심 속에서 완성되는 법이다.
위대한 한 표, 주인의 품격
이번 지방 선거에서 우리가 던지는 한 표는 단순히 후보자 한 명을 고르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나는 상전이 아니라 일꾼을 원한다”는 주권자의 선언이며, “거짓과 부패에는 반드시 벌을 내리겠다”는 엄중한 계약서다.
현명한 자를 찾아내어 우리 곁에 두어야 한다. 그것이 조직과 지역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부디 이번 선거에서는 무사유의 늪에서 벗어나, 날카로운 비판의 눈으로 흑백을 가려내자.
우리는 주인이다. 우리의 한 표가 상전의 오만을 꺾고, 진정한 일꾼의 헌신을 이끌어내는 위대한 도구가 되기를 소망한다.











